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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4) 육아아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0 17:44

수정 2015.08.10 22:38

"회사 눈치·경제 어려움 있어도.. 웃는 아이 보면 힘 솟아"
남성 육아휴직 급여 올 상반기 2213명 신청 전년比 40.7% 늘었지만 '대~단한 사람' 등 낙인
용기 내 육아휴직 썼지만 직장 복귀 못하는 경우도 남성 육아휴직 증가 추세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4) 육아아빠

'전설의 1인'이라든가 '유일무이한 케이스' 혹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번개에 맞았거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대대로 회자된다. '자유분방하다'는 낙인 아닌 낙인이 찍힌다. 바로 육아휴직을 쓴 아빠들 얘기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2213명의 직장인 남성이 육아휴직 급여를 신청했다. 비율로는 작년 상반기(1573명)보다 40.7% 증가한 수치다.
10년 전인 2005년만 해도 이 급여를 받는 남성 직장인은 208명에 불과했다.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대부분 기관·기업에서 이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이들은 베일에 감춰져 있다.

이 같은 장벽을 극복하고 육아전선에 뛰어든 아빠들을 만났다. 이들은 '용감한 아빠'라는 수식어가 외려 부담이 된다고 했다. "특별한 사람 취급 받는 게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본인들은 또래 아빠들과 약간은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지만 주변에 육아휴직을 적극 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A과장은 '3년째 휴직 중'

"육아휴직 하면서 빚이 많이 늘었어요. 그렇잖아요. 아내가 번다고 해도 모자라죠. 육아휴직 2년 차에는 중요한 보험 빼놓고는 예금이며 적금까지 다 깼어요. 대출도 받고요. 사실 경제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육아휴직 못 쓰죠."

중앙부처 공무원인 서명수 과장(가명)은 1971년생이다. 어느 날 집어든 신문에 1971년생 기준으로 평균수명이 100세라는 조사 결과가 실렸다. 전날 서 과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갓 두 살 된 둘째가 아빠를 못 알아본 것이다. 서 과장은 2012년 11월 국회에서 '아동.여성 대상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담당 과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몇 개월을 집에 못 들어가다시피 했다. 중간에 대통령도 바뀌었다. 정신없이 일에 매달렸다. 그리곤 모처럼 일찍 귀가한 날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둘째를 불렀는데, 둘째가 나한테 안 오는 겁니다. 엄청 충격 받았어요. 100일 될 때까지 매일 데리고 자던 아이였는데…."

'평균수명 100세 시대, 직장을 그만두고도 몇 십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서 과장의 고민이 커졌다. 이내 결심이 섰다. "부인과 아이들을 나를 위해 희생하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어요." 그날로 그는 육아휴직계를 제출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자녀 한 명당 1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다섯 살 아들과 두 살짜리 딸을 둔 서 과장은 2년의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제출한 육아휴직 기간 2년을 한 달 남긴 지난 5월, 희소식(?)이 들렸다. 국가공무원법이 바뀌면서 남성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이 여성 공무원과 같이 3년(현행 1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서 과장은 지금 육아휴직 3년 차 아빠다. 3년이란 중압감이 크지 않을까.

■아내 경력단절 막기 위해 결정

"원래 육아에 뜻이 있었으면 첫애 낳자마자 썼겠죠. 가족들, 특히 아내가 저 때문에 희생한다는 인상을 받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겁니다."

서 과장이 육아휴직을 결심한 또 하나의 이유는 금속공예 작가인 아내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다. 첫아이를 출산하고 아내의 작품활동이 뜸해지면서 서 과장은 육아를 나눠 하기로 결정했다. "제도라는 게 정책적 한계가 있습니다. 정규직으로 고용된 사람만 해당된다는 거예요. 지금 일하는 여성들의 현실은 정규직 외에 프리랜서도 많아요. 특히 문화·관광 분야에 종사하는 프리랜서들은 거의 비정규직입니다." 그의 호소가 이어졌다.

"흔히 프리랜서들은 아이 키우면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더 어려워요. 작품 만들다가 중단하면 시장에서 잊혀지는 거죠. 피아노 치던 사람이 쉬면 다시 피아노 치기 쉽지 않죠. 아내도 잘나가는 청년작가였는데 육아를 하다보니 일을 많이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혼 여성작가들이 많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 됐어요." 그의 배려 덕분에 아내는 정상적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육아휴직을 택한 걸 후회하진 않지만 경제적 사정은 여의치 않다. 육아휴직 2년 차 들어 보험 빼고 각종 예·적금을 다 헐었고, 하반기에는 달랑 하나 남은 보험을 담보로 하는 보험계약 대출까지 받았다.

"한 아이당 1년까지는 육아휴직 수당이 나와요. 최대 100만원 받을 수 있는데 세금, 연금 등 빼면 50만원가량 받아요. 굉장히 많이 모자라죠. 사실 경제적 측면을 생각하면 일을 해야 해요."

육아휴직 급여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할 때 정부가 지원해주는 금액이다. 육아휴직 급여는 월 통상임금의 40%(최소 50만원~최대 100만원)다. 지난 5월 육아휴직자 월평균 급여는 1인당 86만6000원이었다. 2014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2인 기준)'이 387만원이고, 2015년 2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105만원임을 고려하면 최저생계비보다 낮다.

■아빠 육아휴직, "추천은 글쎄"

점점 많은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쓰고 있지만 사회적 제도는 물론 인식도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김재일씨(가명·1977년생·전직 교사)는 용기를 내 육아휴직을 쓰고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해 결국 퇴직했다. 출산 전부터 아이는 아빠가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그는 어렵지 않게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시련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보통 학교는 여성 교사 비율도 높고 상대적으로 육아휴직이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알려져 있는데 오히려 남자에겐 그렇지 않았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는 여성 교사가 임신을 하면 출산할 때까지 업무 강도 등을 조정해줬지만 그만큼 남성 교사한테 의지했다. 김씨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했을 때 학교의 시선은 싸늘했다. "관련 규정을 찾아보고 해도 된다고 하니까 쓴 건데, 그렇게 '죽일 놈'이 될 줄은 몰랐어요." 현재 그는 퇴직금으로 세탁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 자리 잡을 땐 많이 힘들었죠. 지금은 교사 할 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나마 남 눈치보지 않고, 시간 나면 아이를 볼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만두길 잘했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했다.
"지금은 사실 박탈감이 조금 들어요. 교사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고 올 수 있어진 정도지 많이 나아진 건 없어요. 그래도 아이 크는 과정을 보는 게 그나마 좀 위안이 됩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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