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부모 육아휴직

조호연 논설위원

“그분을 깨운다. 하루가 시작된다.” 육아휴직 중인 한 한국 남성의 체험 수기 도입부다. 아이를 제때 깨우고, 아침밥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세수·양치 시키고, 머리 묶어주고, 가방 챙겨 유치원 차에 태우는 게 오전 일과다. 이걸 무사히 마치면 하루 일과의 3분의 1은 성공한 셈이라고 한다. 아이가 귀가한 뒤 치르는 오후의 ‘2라운드’는 놀이터가 무대다. 저녁 일과는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흔히 한국 남성에게는 육아 DNA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해보니 할 만하다고 그는 적고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우선 육아 때문에 꿈을 펴지 못하는 여성의 자아실현을 가능케 한다. 경력단절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가 절실한 한국 사회의 원군인 셈이다. 남성에게는 위축된 가정 내 위상과 역할을 확대하는 기회가 된다. 물론 육아휴직을 했다고 단박에 ‘가족 친화적 아빠’가 될 순 없을 터이다. 그러나 어린 자녀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추억을 쌓는 것은 ‘부권’ 복원의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족 붕괴 현상도 막을 수 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뿌리치고 육아휴직을 결행하는 ‘용감한 아빠’들이 늘었다고 한다. 정부 집계 결과 올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이 처음으로 5%를 넘은 것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그만큼 남성 육아휴직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이제 겨우 5%를 넘어섰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성 대다수는 경력상 불이익 등의 이유로 육아휴직을 꺼리고 있다. 한국 사회는 남성 육아휴직 확대가 절실하지만 정책과 제도, 사회적 인식 부족이 그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사회에 육아 DNA가 없는 셈이다.

정부는 최근 공식 육아휴직 용어를 ‘부모 육아휴직’으로 바꿨다. 육아휴직은 원래 여성이 하는 것이란 관념을 깨고 남성 참여 확대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아이를 낳았는데 아빠가 육아휴직을 안 내면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한다. 당장 유럽을 따라잡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성이 눈치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분위기 마련이 시급하다.


Today`s HOT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이라크 밀 수확 미국 UC 어바인 캠퍼스 반전 시위 미국 해군사관학교 팀워크! 헌던 탑 오르기
세계 최대 진흙 벽돌 건물 보수 작업 광주, 울산 상대로 2-1 승리
개아련.. 웨스트민스터 도그쇼 총격 받은 슬로바키아 총리
순국한 경찰 추모하는 촛불 집회 시장에서 원단 파는 베트남 상인들 로드쇼 하는 모디 총리 조지아, 외국대리인법 반대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