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을 '과잉 무상복지'에 중독시킨 정부
정부가 엄마의 취업 여부에 따라 아이 보육료를 차등 지급하는 보육체계 개편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범사업 중간조사 결과 맞벌이와 외벌이 상관없이 대부분 부모가 기존 종일제 보육(12시간)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확대한 무상복지를 다시 줄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제주 서귀포시, 경기 가평군, 경북 김천시 등 세 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난 7월 시행한 맞춤형 보육 시범사업의 ‘종일형’(12시간) 신청률은 96%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4%만이 ‘맞춤형’(반일형·6~8시간)을 신청했다. 전업주부를 포함한 대다수 부모가 아이를 하루 12시간까지 어린이집에 맡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다.

전업주부 등 12시간 보육이 필요 없는 부모가 30~40%가량일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다른 결과다.

복지부 관계자는 “예상보다 많은 학부모가 종일형을 선택하는 바람에 이들이 제출한 취업증명서 등을 검토해 종일형이 필요 없는 사람을 걸러내는 중”이라며 “이미 12시간씩 아이를 맡기는 데 익숙해진 부모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시범사업은 전업주부 등 종일제 보육이 필요 없는 부모에게 지원하는 보육료를 효율화하기 위해 시작했다. 지금은 0~5세 영·유아가 있는 가정은 취업주부든 전업주부든 똑같은 시설보육료(12시간 기준 72만원)를 지원받는다.

이런 보편적 무상보육으로 관련 예산은 2011년 5조1000억원에서 올해 10조4000억원으로 두 배 넘게 불었다. 정부 관계자는 “전업주부에게는 6~8시간을 지원하고, 맞벌이 가구엔 12시간을 지원하면 관련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벌이, 맞벌이 상관없이 12시간 보육료를 모두 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제주 서귀포에서는 전체 대상 아동 2700여명 중 95%(2550명)에 달하는 아동의 부모가 취업이나 다자녀, 한부모, 임신 등으로 6~8시간이 아닌 12시간 보육이 필요하다는 증명서를 제출했다. 가평군에서도 전체 대상자 600여명 중 반일형 보육 신청자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반일형을 선택하면 매달 양육보조금 5만원(김천·가평)이나 일시 보육 바우처 10시간권(4만원 상당·서귀포)을 주지만 반일형 전환을 유도하기엔 턱없이 적다는 반응이다.

이번 시범사업에서 보건복지부는 또 가정에서 양육했을 때 주는 양육수당을 한 달에 5만~10만원가량 늘렸다. 시설보육으로 받는 보육료(매월 72만원)에 비해 가정 양육수당(20만원)이 터무니없이 적어 과도한 시설보육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양육수당을 더 받기 위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던 아이를 집에서 키우겠다는 학부모의 신청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14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숙영 씨(30)는 “겨우 5만원 더 받자고 아이를 내내 집에서 키운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무상복지의 역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무상보육을 추진했다.

제대로 된 검토 없이 0~5세 전면 무상보육이 시작됐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말기 복지부가 다시 전업주부 대상 지원액을 반일제 기준으로 깎는 보육체계 개편안을 내놨지만 대선을 앞둔 국회가 반대했다.

한 보육정책 전문가는 “무상보육으로 이미 학부모들이 12시간 보육 패턴에 익숙해져버린 상황”이라며 “한번 늘린 복지는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